손치웅 선생의 몽양 여운형 회고담 - 4
4. 한국독립운동기념관의 설립에 대하여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십니까?
답) 나는 해방당시나 지금이나 정치에는 큰 관심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내가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은 과학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서 생각해볼수록 몽양 선생은 큰 인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자료를 중심으로 하여 호주 시드니에 <한국독립운동기념관>을 세울 계획입니다.
--<여운형 선생기념관>이 아니라 <한국독립운동기념관>이군요?
답) 그렇습니다. 여운형 선생을 중심으로 한 기념관입니다. 한국에서는 몽양 선생을 잘 모르는 분이 많은데, 지난번 일본 NHK에서 몽양선생 특집을 만들 때 이를 취재 나온 일본 기자들이 그래요.
만일 해방 당시에 몽양이 건준을 만들고, 전국에 건준 치안대를 조직하여 해방직후의 혼란기를 수습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고 했겠느냐는 겁니다. 이 점에서 여운형 선생을 좌우라는 이념의 잣대로 보는 단순시각은 마땅치 않다는 겁니다.
해방 당초부터 몽양 선생은 정적들로부터 친일파다, 빨갱이다 하는 누명을 들어왔지만, 과연 몽양 선생만큼 항일 운동을 한 사람이 누가 있다고 그분을 친일파로 몹니까? 좌파의 테러를 수도 없이 당하면서 우파를 감싸 안으려고 했던, 그래서 조만식 선생에게 밀서까지 보내며 민족을 통합시키고자 했던 그분을 무조건 빨갱이로 몹니까?
나는 마음 한 구석에 한국의 이런 점이 싫어서 30여년전 호주로 이민을 갔던 것이 아닐까 하고 지금 깨닫고 있습니다. 민족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던 몽양 선생을 친일파나 빨갱이로 몰다니요? 나는 1947년 7월19일 몽양 선생이 암살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울대학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가서 보니, 몽양 선생은 미소를 띈 환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습니다. 도무지 죽은 것 같지 않았습니다.
평화와 휴매니즘,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그것이 몽양 선생의 정신이 아니었을까요? 세월이 지날수록 몽양 선생은 큰 인물이었다는 생각이 날로 듭니다.